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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인물편

박현규

antagonist · 박해일

전역 후 공장 취직한 직후부터 사건 발생, 비 오는 날마다 '우울한 편지' 라디오 신청, 부드러운 흰 손—정황 증거 모두가 그를 가리켰던 마지막 용의자. 그러나 미국에서 온 DNA 검사 결과가 그를 풀어준다. 박해일에게 봉준호는 '너는 범인이 아니라고 결백하다고 믿고 연기하라'고 비밀스레 지시했다.

부드러운 손과 '우울한 편지'의 맥거핀

박현규를 가리키는 정황 증거는 짧고 강하다: 전역 후 시멘트 공장 취직 직후부터 사건 발생, 비 오는 날마다 '우울한 편지'의 라디오 신청, 살아남은 피해자가 증언한 '희고 부드러운 손'. 그러나 ⟦OUTSIDE: '우울한 편지'의 마지막 가사는 '이젠 내게 아무 관계없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요?'다. 박현규를 범인으로 만든 유일한 단서가 가사 안에서 스스로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셈이다. 봉준호가 깔아둔 맥거핀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 더 결정적으로, 그는 신청 사연이 방송에 소개된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그의 라디오는 책을 읽으며 배경음으로 틀어둘 뿐인 일상매체였기 때문이다.

봉준호의 비밀—'너는 결백하다'

박해일은 촬영 도중 봉준호에게 거듭 물었다. '감독님, 제가 범인이에요?' 봉준호의 답은 처음부터 일관됐다—'이거 비밀인데, 아니다. 니가 범인이 아니라고 결백하다고 믿고 연기해라.' 술 먹은 박해일이 다시 '감독님, 나 범인 아니죠? 형사 이 나쁜 새끼들, 인권을 유린하는 개새끼들, 나는 범인이 아닌 거예요, 그죠?'라며 매달리자 봉준호는 '그래 알았어. 너 범인 아니니까 그만 먹고 들어가서 자.' 봉준호는 10주년 GV에서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박현규를 범인이라 정하지 않고 썼고 그래서 촬영 중에도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박현규가 처음 취조받을 때 던지는 한 마디—'아저씨들, 죄 없는 사람들 잡아다가 족치는 거, 동네 애들도 다 알아요'—은 그가 단순 용의자가 아니라 강압 수사 시대의 증언자 자리에 서 있음을 처음부터 알리는 신호였다.

터널 속으로 사라진 자, 그리고 실제 모델 윤 모

박현규는 수갑을 찬 채 진주 죽봉터널의 어둠 속으로 비척비척 걸어 들어가며 극에서 퇴장한다. ⟦OUTSIDE: 봉준호는 2004년 인터뷰에서 박현규의 실제 모델이 1997년 27세에 암으로 사망한 공장노동자였음을 처음 언급했다. 그는 화성 9차 사건 용의자로 잡혀 5일간 감금된 채 마대자루에 넣어 맞으며 27차례 거짓 진술서를 썼고, 일본에서 도착한 유전자 검사 결과 풀려났으나 강제추행 혐의로 3개월 독방에 더 갇혔다. 형 윤동기의 2021년 서울신문 인터뷰: '이춘재 누명 쓴 동생 매질 또 매질… 결국 암 생겨 27세에 떠나'⟧. 영화 속 박현규의 무죄가 현실에서는 그를 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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