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의 사도, 손의 사람
서태윤은 영화 내내 손으로 서류를 뒤지고 쓰레기통을 헤집는 인물이다. '서류는 절대 거짓말 안 하거든요'라는 그의 신념은 단순한 직무 윤리가 아니라 '악은 외부의 증거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는 형이상학적 전제에 가깝다. 박두만이 '내면 통찰'을, 서태윤이 '외부 증거'를 신봉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정반대이지만, 이동진의 지적대로 '악은 알아볼 수 있다'는 공통 신념을 공유한다. 그래서 그들은 둘 다 같은 방식으로 무너질 자격을 갖춘 인물이다.
김소현의 유사 오빠—이성과 광기 사이
비 오는 초소에서 형사들에게 학교 변소 살인마 얘기를 들려준 여중생 김소현은, 서태윤이 양호실에서 등에 반창고를 붙여준 적이 있는 사이다. 그녀의 시신에서 서태윤은 같은 반창고를 발견하고 옷을 덮어준다. ⟦OUTSIDE: 이동진은 이 장면을 통해 서태윤이 '강간 피해자의 유사 오빠' 자리에 서게 됨을 지적한다. 카메라 연출도 이를 뒷받침하는데, 나무 뒤에 숨어 함정 수사 중인 서태윤의 시점 앵글이, 야산에서 다음 희생자를 물색하는 범인의 시점 앵글과 완벽히 겹친다.⟧ 형사와 살인자, 피해자의 오빠와 범인이 시각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영화의 핵심 논리가 서태윤 한 사람 안에서 작동한다.
무너진 신념과 핏자국
박현규를 잡고 미국 FBI에 보낸 정액 샘플의 결과 서류 한 장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태윤은 그 자리에서 박현규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이고, 박현규에게 맞아 그의 손에서 흐른 피가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서류를 적시는 것을 본다. 그가 가장 신뢰했던 두 가지—손과 서류—가 같은 순간에 함께 처참한 결말을 맞는다. 삭제된 엔딩에서는 사표를 쓰고 분과 서러움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던 서태윤의 어깨에 '절대악'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손을 얹는다. 원작 연극 《날 보러 와요》의 김 형사가 끝까지 좌절하다 미쳐버리는 결말처럼, 영화의 서태윤도 그 후가 좋지 않았으리라는 암시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