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는 영화 끝까지 정말 모르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도 끌어안았는가.
raw 안에 두 줄이 박혀 있다 ─ (1) 정서경 작가가 「방구석 1열」에서 '미도가 정말 모르고 있을까' 의문 제기, (2) 강혜정의 보라색 상자 도착 직전 표정에 대한 일부 평론의 '이미 아는 표정' 해석. 박찬욱은 답하지 않는다. 만약 알고도 사랑했다면 마지막 '사랑해요, 아저씨'가 더 잔인해진다 ─ 영화의 미해결 중 가장 깊은 자리.

Oldboy
박찬욱 감독 · 2003
오대수는 1979년 친구 한 명에게 흘린 한 마디 가십이 동급생 이수아를 합천댐 투신으로 몰았고, 24년 뒤 그 누나의 동생 이우진에게 15년 감금과 ─ 모르는 채로 자기 친딸과 사랑하게 되는 ─ 복수를 당한다. 복수가 끝나는 자리에서 두 남자는 둘 다 자신을 단죄한다.
제 1 장
이 작품을 떠받치는 9명의 인물과 13개의 관계.
최민식 (아역 오태경)
말이 너무 많아 1979년 친구에게 한 마디로 한 여자(이수아)를 죽음에 몰았고, 그 대가로 1988~2003년 8평 사설 감옥에 갇혔다. 격투력은 TV 섀도 복싱 15년의 산물이며 한실장에게는 명백히 약하다. 영화 끝에서 자기 혀를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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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 (아역 안연석=유연석)
선천적 심장 약화로 모터를 달고 산다. 모교 상록고를 영어로 변환한 닉네임 에버그린. 24년 전 합천댐에서 누나의 손을 놓은 자기 자신과 오대수를 동시에 단죄하는 복수극의 설계자. 복수 직후 권총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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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정
일식집 지중해의 보조 요리사. 5년간 채팅 친구 에버그린의 익명 후원을 받아왔다. 사실은 오대수의 친딸 오연희이며, 영화 내내 이 사실을 모른다 ─ 또는 모르는 척한다. 이우진이 양쪽에 건 최면이 두 사람을 연인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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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한 (아역 유일한)
오대수의 베프. 1979년 오대수에게서 이수아 이야기를 처음 들은 자, 24년 뒤 자기 PC방에서 친구 가족 이야기를 험담하다 그 험담을 도청하던 이우진에게 CD 조각으로 살해당한다. 영자 친구 춘심을 통해 학교에 소문을 퍼뜨린 진짜 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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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서
이우진의 친누나, 오대수와 같은 학교(상록고). 동생과의 관계가 학교에 소문이 나면서 상상임신에 이르고 1979년 7월 5일 합천댐에 투신. 영화에서 살아있는 컷은 거의 없으나 모든 인물의 24년이 이 인물의 부재에 대한 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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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
이우진의 의뢰로 오대수와 미도 양쪽에 최면을 건 인물. 영화 마지막에 오대수가 미도가 자기 딸이라는 기억을 지워달라며 다시 찾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사실상 이 인물의 최면 두 개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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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수
오대수를 1988~2003년 가둔 자. 표면적으로는 손목까지 잘려가며 오대수에게 당하는 인물이지만 사실 우진과 처음부터 한패. 새 감금방 건물을 받는 대가로 손목을 내준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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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옥
이름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말수도 감정 표현도 거의 없으며 인간 흉기 오대수를 업어치기로 간단히 제압하는 무력. 펜트하우스 장면에서 오대수에게 귀를 찔리고 격분해 오대수를 죽이려 들자 이우진이 직접 권총으로 쏴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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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록
옥상에서 강아지를 안고 자살하려던 남자. 오대수가 풀려나 처음 마주친 사람. 박찬욱은 코멘터리에서 이 남자가 수간이 들켜 죽으려 한다는 설정을 오광록에게 직접 전했다고 밝힌 바 있으나, 본인은 영화 전체 맥락에서 중요한 대목은 아니라고 정리. 그가 남긴 말 ─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 이 영화 마지막 최면술사를 움직이게 만드는 단 한 줄이 된다 (수미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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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이 이야기를 빚어낸 8개의 결정적 장면을 시간 순으로.
이수아가 합천댐에서 투신. 그 자리에 동생 이우진이 함께 있었으나 손을 놓는다. 카메라가 셔터 두 컷을 남긴다 ─ 한 장은 투신 직전의 사진, 한 장은 투신 중의 확대 컷. 이수아의 마지막 말이 영화 전체의 질문 형식을 결정한다. 박찬욱은 영화 24년 뒤의 마감일을 같은 7월 5일로 둠으로써 '영화 전체가 이 하루를 반복하기 위한 기계장치'라는 구조를 박았다.
“우진아, 나... 꼭 기억해줘야 돼. 알았지? 난 후회 안 한다. 너는?”
이수아 · 이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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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수는 술 취해 경찰서에서 행패. 천사 날개를 어깨에 매단 채 풀려나 공중전화로 딸 연희에게 건다 ─ '연희야, 아빠가 내가, 아빠가 아빠가 내가, 내가 연희 선물 샀거던, 엉?'. 친구 노주환에게 잠깐 수화기를 건넨 사이 보라색 우산을 쓴 누군가에게 납치당한다. 풀려난 후 미도의 이름이 '연희'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 영화에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대수 · 노주환 · 이우진 · 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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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수가 7.5층 사설 감옥의 직원 18명을 장도리 한 자루로 부순다. 박찬욱이 만화적 시퀀스를 콘티로 짜놨었다. 촬영 마지막 날, 분량을 못 채운 상태에서 바닥에 널부러진 최민식을 본 박찬욱이 콘티를 버리고 즉흥적으로 원테이크 결정. 17 테이크, 사흘. 등에 꽂힌 칼은 CG. 영화 외부에서 이 한 장면이 작품 전체의 인장이 됐다.
“이 사실을 말하면 너는! 머리 끝부터 발톱까지 이 지구상, 동서남북 어디서도 네 시체를 찾을 수 없을 거다. 왜? 내가 잘근잘근 씹어 먹을 테니까!”
오대수 · 박철웅 · 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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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난 오대수가 일식집 지중해에서 산낙지를 통째로 씹는다. 그때 받은 첫 통화 ─ '옷은… 마음에 들어요?'. 미도가 오대수의 손을 잡자 (최면 신호) 오대수는 기절. 미도의 집에서 깨어난 그가 5년간 채팅한 친구 '에버그린'을 모니터로 마주한다. 닉네임 에버그린은 모교 상록고등학교의 영어 변환. 사건#1의 합천댐을 죽인 자가 사건#3에서 사실은 미도의 5년 후원자였다.
“옷은... 마음에 들어요?”
오대수 · 미도 · 이우진 · 유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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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환이 PC방에서 옛 이수아를 회상하며 '걸레였다 아이가'라고 옮긴다. 도청을 다 떼버린 오대수가 우진의 손길을 끊어버려, 우진은 직접 PC방에 가 있었다. CD를 부러뜨려 노주환의 가슴을 찌르고 헤드폰으로 오대수에게 외친다 ─ '노주환 씨는 당신 때문에 죽은 거예요. 오케이?'. 같은 시간 펜트하우스에서 이우진은 헤드폰을 끼고 요가를 하다 운다. 영화에서 이우진이 공식적으로 우는 첫 시점.
“오대수 씨, 오대수 씨? 우리 누나는요, 걸레가 아니었어요. 예? 그건 정말 알아주셔야 돼요. 당신이 도청 장치를 다 없애버려가지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응? 엿들으려고요. 그러니까 노주환 씨는... 당신 때문에 죽은 거예요. 오케이?”
이우진 · 노주환 · 오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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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수가 0604(잠언 6장 4절 + Maxim 빌딩 + 펜트하우스 = 3단계 트릭)로 비밀번호를 뚫지만 사실 실장이 직접 누른 번호는 0604였다. 우진은 오대수의 추리를 듣더니 '겁이 났겠지'는 틀린 답이라며, '왜 가뒀나'가 아니라 '왜 풀어줬나'가 옳은 질문이라고 폭로 ─ 미도가 친딸이며, 두 사람의 사랑은 양쪽 최면의 결과라는 진실. 오대수는 무릎 꿇고 '내가 이제부터 이우진의 개야'라고 짖다가 결국 가위로 자기 혀를 자른다. 우진은 호신용 권총 대신 자기 심장을 멈추는 리모컨이라며 녹음 테이프 리모컨을 던져주고 자리를 뜬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란 말이야! 자, 다시 ─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딱 15년 만에 풀어 줬을까... 요?'”
오대수 · 이우진 · 한실장 · 박철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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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마친 우진은 엘리베이터에서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를 남긴다. 그러다 1979년 합천댐의 회상으로 화면이 넘어간다 ─ 누나의 손을 붙잡고 있던 어린 우진이 어느 순간 현재의 우진으로 바뀌어 있고, 누나를 놓은 그 손이 권총을 쥐는 모양으로 변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지만 내릴 사람도 탈 사람도 없는 안에서 우진은 자기 머리에 권총을 쏜다. 그가 마지막으로 입 밖에 낸 말은 ─ '나요, 이제 무슨 낙으로 살지?'.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이우진 · 이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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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끝나고 백발이 된 오대수가 최면술사를 다시 찾아 '미도가 자기 딸이라는 기억'을 지워달라 부탁한다. 최면술사는 오대수의 편지 마지막 한 줄 ─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 에 마음이 움직였다며 진실을 아는 자아가 죽는 최면을 건다. 영화는 그 최면이 통했는지 답하지 않는다. 빨간 코트의 미도가 안기며 '사랑해요, 아저씨'라고 말하는 자리에서 오대수는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을 짓는다. 박찬욱은 배우에게 '기억이 지어진 거 같기도 하고 안 지어진 거 같기도 한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한 표정'을 요구했다.
“사랑해요, 아저씨.”
오대수 · 미도 · 유형자 · 자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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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핵심 인물 3명을 따로 떼어 더 깊이 들여다본 글.
인물편
trigger
윤진서 분. 이우진의 친누나, 오대수와 동갑·같은 학교(상록고). 작중 등장 시간은 짧다 ─ 옥상 회상씬, 합천댐 투신씬. 그러나 영화 전체가 이 인물의 죽음 이후 24년에 대한 사후처리다. 미도라는 인물의 존재 자체가 이수아의 대체물로 이우진이 설계한 것이고, 오대수의 15년 감금은 이수아의 24년에 가까운 부재에 대한 시간적 동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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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편
antagonist
노주환을 죽이고 그 직후 운다. 오대수에게 복수를 끝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후련한 미소를 짓다가 그 직후 자기 머리에 총을 쏜다. 분노와 슬픔의 시간 간격이 거의 0인 사람. raw 에서 가장 무서운 한 줄 ─ '15년 동안 당신을 지켜봤어요. 덕분에 그동안 잘 지낸 셈이야. 심심하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고.' ─ 15년간 오대수를 감시한 행위가 복수가 아니라 그냥 함께 있는 방식이었다는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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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편
protagonist
5년간 채팅한 친구 에버그린, 부모도 없이 자란 자기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보내준 익명의 후원자,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얼굴을 모르는 채로 사랑한다고 말해준 사람 ─ 그 사람이 자기를 이용한 사람의 다른 얼굴이었다는 사실. 미도는 영화 끝까지 이걸 모른다 ─ 또는 모르는 척한다. 그게 박찬욱이 짠 잔인함의 이중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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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raw 안에 두 줄이 박혀 있다 ─ (1) 정서경 작가가 「방구석 1열」에서 '미도가 정말 모르고 있을까' 의문 제기, (2) 강혜정의 보라색 상자 도착 직전 표정에 대한 일부 평론의 '이미 아는 표정' 해석. 박찬욱은 답하지 않는다. 만약 알고도 사랑했다면 마지막 '사랑해요, 아저씨'가 더 잔인해진다 ─ 영화의 미해결 중 가장 깊은 자리.
원래 거세 장면이었으나 최민식의 제안으로 혀로 변경됐다는 raw 사실이 해석의 단서. 거세는 미도와의 근친에 대한 죄책감의 표시로 읽혀 개연성이 틀어졌을 것이라는 raw 메타 해설 ─ 즉 혀는 (a) 1979년 자기 가십으로 누나(이수아)를 죽인 자가 그 기관을 단죄하는 자기 처벌이자 (b) 미도에게 진실을 영원히 말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동시에 품는다. 오이디푸스가 본 죄로 눈을 찔렀다면 오대수는 말한 죄로 혀를 잘랐다 ─ 박찬욱이 의식적으로 박은 변형.
박찬욱 본인은 열린 결말로 의도. 최민식 연기는 '기억이 남아있다는 전제'(박찬욱 코멘터리). 박찬욱이 배우에게 요구한 것은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한 표정'. 빨간 코트(작중 빨간색은 금기 감정 코드) ─ 어느 쪽이든 근친의 감정이 남았음. 시나리오에는 최면술사가 우진과 만나 '행운을 빈다고 말해주세요'라고 부탁받는 회상 장면이 있었으나 박찬욱이 '극이 너무 우진의 의도대로 가는 것 같아' 컷 ─ 즉 박찬욱은 우진의 그림 밖에 미도와 오대수의 자리를 의식적으로 비웠다.
raw 내부의 4 입장 ─ (1) 오대수의 혀(이우진의 자기변호), (2) 합천댐에서 손을 놓은 이우진(영화 마지막 회상), (3) 상상임신을 진짜로 받아들인 이수아(정신적 자살), (4) 소문을 옮긴 노주환·춘심·학교(분산된 책임). 영자가 들은 초기 소문은 '깔끔한 아이였지만 만나던 남자가 있다' 정도였고, 누군가가 살을 붙이며 '걸레'로 변형. 박찬욱은 이우진의 입을 빌려 '모래알이든 바위 덩어리든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4 입장을 모두 옳고 모두 부족하게 그린다 ─ 복수극으로 쉽게 닫지 못하는 이유.